[인터뷰] 김승철 재영한인의사협회장
한국에선 ‘기피과’가 영국에선 ‘인기과’
형사처벌 공포, 억대 손해배상금도 없다
영국 의사 해외 유출 “낮은 임금 때문”

‘흉부외과 19.57대 1, 일반외과 3.4대 1’. 물론 한국 상황은 아니다. 2022년 기준 영국 전공의 지원율이다.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흉부외과나 외과처럼 ‘바이탈(vital)과’가 의사들에게 더 인기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

재영한인의사협회(Korean UK Medical Association, KUMA) 김승철 회장은 ‘사법 리스크’를 가장 큰 차이로 꼽았다. 영국에서는 의사가 의료 과실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민사소송이 제기돼도 손해배상금을 개인이 부담하지 않는다. 김 회장은 영국 글래스고대학(University of Glasgow) 의대를 졸업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UCLH(University College London Hospital)에서 펠로우(전임의)로 근무하고 있다.

김 회장은 영국에서 흉부외과나 외과 등 외과 계열은 소위 ‘인기과’로 경쟁률이 세다고 했다. 외과 계열을 전공하기 위해 재수, 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련 기간이 짧은 것도 아니다. 영국은 의대를 졸업하면 의사면허를 주지만 독립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려면 2년간 별도 수련교육(foundation programme)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1차 진료 의사인 GP(General Practitioner)가 될 수 있다. 전문의 자격은 그 이후 7~8년 수련교육을 받아야 취득할 수 있다.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 취득까지 보통 10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영국 MZ세대 의사들은 ‘서전(surgeon)’이 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당직 근무가 적어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영국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사법 리스크’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 의사들처럼 형사처벌이나 수억원대 손해배상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의사들이 관련 분야를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아무리 늘려도 소용없다고 했다.

청년의사는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김 회장을 만났다. 서울대병원에서 연수생으로 있기도 했던 김 회장은 한국 의료제도는 물론 의료 현안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청년의사와 만난 김승철 재영한인의사협회장은 '사법 리스크'가 적은 영국 의료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쳥년의사).
청년의사와 만난 김승철 재영한인의사협회장은 '사법 리스크'가 적은 영국 의료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쳥년의사).

- 한국에서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등이 ‘기피과’가 된 데는 사법 리스크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영국 의사들도 법적인 문제를 겪는다. 하지만 흉악범이나 성범죄자가 아닌 이상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고의적이지 않은 의료사고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의사를 본 적이 없다. 민사소송이 제기돼 손해배상 판결이 나와도 의사 개인이 배상하지 않는다. NHS 소속인 병원이 부담한다. 또한 의사 대부분이 MDU(Medical Defense Union)에 소속돼 있어서 법률 상담 등 도움을 받는다.

누구나 실수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 의사들은 근무시간이 길고 하루에 보는 환자도 많다. 실수할 위험이 더 큰 환경인데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그 보상금을 개인이 물어야 한다면 당연히 기피할 것 같다.

- 의사가 오진을 했다면?

오진 위험은 항상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겼다면 병원 내에서 사실관계 등을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오진 등으로 인해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적다. NHS를 신뢰하고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영국 내에서 NHS 비판 여론이 많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더 나은 NHS를 만들자는 비판이다.

김 회장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의료계 내 자율정화 기능을 꼽았다. 의사회가 ‘문제 있는 의사’를 감싸기보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선을 긋고 거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술실에 CCTV를 달자는 요구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해외로 떠나는 의사 많은 영국, 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한국과는 달랐다. 의료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은 국영의료체계로 의사 대부분은 NHS 소속이다. 일주일 평균 근무 시간도 40시간으로 한국 의사보다 짧다. 영국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걸 현장에서 체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는 시각은 같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보건통계(OECD Health Statistics 2023)에 따르면 영국은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3.0명으로 한국(2.6명)보다 많다.

영국은 의사 인력 해외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김 회장은 “영국 의사 중 80% 정도가 해외로 떠날 생각을 해봤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고 했다. 주변에서도 해외로 나가 의사로 일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이다. 영국 주니어 의사(전공의)들은 지난해부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 9차례 파업을 진행했다.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10차 파업도 예고됐다.

NH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병원 의사 평균 연봉은 8만6,698파운드(약 1억4,231만원)이며 1년차 주니어 의사는 3만7,000파운드(약 6,060만원), 2년차는 4만5,100파운드(약 7,388만원)이다. 이후 전문의 수련 과정을 밟으면 연봉은 더 올라가 8~10년차 주니어 의사는 평균 7만7,100파운드(약 1억2,631만원)을 받는다.

-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의사가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다. 의사 임금이 거의 20년째 동결돼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년차 주니어 의사 월급이 똑같다. 특히 런던에 사는 의사들은 거주비 등이 너무 비싸서 NHS 근무가 끝나면 사립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의사들이 결정권을 많이 빼앗긴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의료정책 등에 전문가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당직실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불만도 많다.

- 어느 나라로 많이 진출하는가.

미국과 캐나다, 호주로 많이 간다. 특히 별도 시험 없이 영국 의사면허를 바로 인정해주는 호주로 많이 간다. 미국과 캐나다는 의대를 다시 다닐 필요는 없고 별도 면허시험만 보면 된다. 호주의 경우 레지던트가 영국 컨설턴트(Consultant)보다 많이 받는다고 한다. 전문의를 기준으로 호주로 갔을 때 영국보다 임금을 2배 정도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컨설턴트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 주니어 의사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영국 내 여론은 어떤가.

여론도 지지하고 있다. 의사 임금이 이렇게 낮을 줄 몰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환자들은 의사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근무하는지 잘 알고 있다.

- NHS의 문제로 꼽히는 긴 진료 대기 시간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의 근무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여론은 없나.

없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환경이 다르다. 한국은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려 의료선진국이 됐다. 반면 영국은 안전성이 최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효율성이 많이 떨어져 있다. 체크 리스트가 많다. 결국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

- 한국은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의료 기피 문제 등을 해결하려고 한다.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기피과가 생긴 원인은 그대로인데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구멍을 메우지 않은 상태에서 늘려봤자 그 구멍으로 다 빠져나갈 것이다. 결국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게 중요해 보인다. 그래야 지원자도 늘고 남는 의사도 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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